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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보육교사회가 있기까지...

"엄마에게 일할 권리를, 아이들에게 보호받을 권리를!"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산업 구조의 재편으로 기혼 여성들이 노동 시장으로 대거 유입되었고, 이들이 전체 여성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일하는 어머니의 급증은 아이는 집에서 키워야 한다는 기존의 방식을 전환시켜 자녀들의 안전한 보호와 건강한 성장을 위한 보육을 사회적인 욕구로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70년대 말까지의 아동보육에 관한 정책은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1982년, 교육과 탁아 기능의 통합을 위한 "유아교육진흥법"을 제정하고, 이에 따라 '새마을 유아원'이 대거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마을 유아원의 파행적운영으로 인하여 보육의 기능이 전면 상실되는 결과를 낳았고 특히 저소득 층 가정의 자녀들이 그대로 방치되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6년 주로 수도권 빈민 지역에서 각각 활동하던 탁아소 활동가들이 다년간의 탁아 경험을 토대로 탁아활동에 대한 공유와 공동의 활동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지역사회아동교사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지역사회아동교사회는 1987년 6월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로 명칭 변경하였습니다.

1987년 6월부터 1995년에 이르기까지 지역사회탁아소의 활동은 3기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제1기 (1987년 6월~ 1991년 7월)는 빈민 탁아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을 중점으로 활동하였고, 탁아입법을 제정하는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제2기 (1991년 하반기~ 1994년 말)까지의 주요활동은 지원 요구 투쟁과 민간 보육의 비영리화를 위해 애쓰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는 영유아보육법 개정 작업과 보육 제도 실시에 따른 제도 개선을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하였습니다.

제3기 (1995년~)는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는 전국민간.가정보육시설 연합회 창립을 계기로 민간보육운동의 내용을 이에 이양하고 이후 활동의 거취를 논의하여 보육교사대중조직으로 나아갈 것을 결의하고 1996년부터는 대중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쳐 나가기 위한 준비 및 실천을 해 나갔습니다.

"연구하는 교사,실천하는 교사,발전하는 보육"

이의 결과로 1997년 7월 지탁연은 한국보육교사회로 전환하여 창립총회를 하게되었습니다.

한국의 보육상황은 아직도 매우 열악합니다.
지난 8년동안 급성장한 보육사업은 여러 이해집단들 틈바구니에서 진정한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절대적으로 시설이 부족했던 몇 년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늘어나 손만 뻗치면 놀이방과 어린이집은 찾을 수 있습니다. 보육교사 양성과정을 통해 배출된 보육교사들의 수도 비약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양적 확충에만 치중되는 보육정책의 결과로 나타나는 많은 문제들은 보육시설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아이들과 교사들이 감수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한국보육교사회는 전국의 보육교사들과 함께 아이들의 권리를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활동, 보육의 질을 높여 내기 위한 제반 활동 등을 하고자 합니다.

보육관련단체, 사회단체와의 다양한 연대활동을 통해 보육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습니다.